살인자의 기억법 2017. 6. 30. text

김영하

 

  • 아무도 읽지 않는 시를 쓰는 마음과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는 살인을 저지르는 마음이 다르지 않다.
  • 죄책감은 본질적으로 약한 감정이다. 공포나 분노, 질투 같은 게 강한 감정이다.
  • 인간을 틀 몇 개로 재단하면서 평생을 사는 바보들이 있다. 편리하기는 하겠지만 좀 위험하다. 자신들의 그 앙상한 틀에 들어가지 않는 나 같은 인간은 가늠조차 못 할 테니까.
  • 은희가 중학생일 때 남자애들 몇이 집 근처를 얼쩡거렸다. 녀석들은 젊고 나는 그때도 이미 늙어 있었지만 나를 보고 달아나지 않은 놈들이 없었다. 욕을 하거나 겁을 준 것도 아니고 조용히 몇 마디 했을 뿐인데 웬일인지 다들 기가 질린다는 표정으로 꽁무니를 뺐다. 제아무리 사나운 개도 동물병원에 오면 꼬리를 말고 낑낑거려 주인들을 놀라게 한다. 십대 남자아이들도 개와 다르지 않다. 첫 대면의 눈빛이 관계를 결정한다.
  • "혼돈을 오랫동안 들여다보고 있으면 혼돈이 당신을 쳐다본다. _니체"
  • 언제나 그랬듯이 언어는 늘 행동보다 느리고 불확실하며 애매모호하다.
  • 꽃을 오래 보고 있으면 무서웠다. 사나운 개는 작대기로 쫓지만 꽃은 그럴 수가 없다. 꽃은 맹렬하고 적나라하다. 그 벚꽃길, 자꾸 생각난다. 뭐가 그렇게 두려웠을까. 그저 꽃인 것을.
  • 과거 기억을 상실하면 내가 누구인지를 알 수 없게 되고 미래 기억을 못 하면 나는 영원히 현재에만 머무르게 된다. 과거와 미래가 없다면 현재는 무슨 의미일까. 하지만 어쩌랴, 레일이 끊기면 기차는 멈출 수밖에.
  • 설령 붙잡힌다 해도 처벌받지 않을 것이라는 점에 대해서 가끔 생각한다. 이상하다. 좋아야 하는데 별로 좋지가 않다. 인간사회로부터 정말 철저하게 버림받은 것 같은 기분. 나는 철학은 모른다. 내 안에는 짐승이 산다. 짐승에게는 윤리가 없다.
  • 사람들은 악을 이해하고 싶어한다. 부질없는 바람. 악은 무자개 같은 것이다. 다가간 만큼 저만치 물러나 있다. 이해할 수 없으니 악이지. 중세 유럽에선 후배위, 동성애도 죄악 아니었나.
  • 작곡가가 악보를 남기는 까닭은 훗날 그 곡을 다시 연주하기 위해서일 것이다. 악상이 떠오른 작곡가의 머릿속은 온통 불꽃놀이겠지. 그 와중에 침착하게 종이를 꺼내 뭔가를 적는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닐 거야. 콘푸오코con fuoco-불같이, 열정적으로-같은 악상기호를 꼼꼼히 적어넣는 차분함에는 어딘가 희극적인 구석이 있다. 예술가의 내면에 마련된 옹색한 사무원의 자리. 필요하겠지. 그래야 곡도, 작곡가도 후대에 전해질 테니까.
  • 오디세우스의 여행을 생각해봐도 그렇다. 오디세우스는 귀환을 시작하자마자 연을 먹는 사람들의 섬에 기착한다. 사람들이 친절하게 권한 연 열매를 먹고 나자 그는 고향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것을 잊어버린다. 그뿐만 아니라 부하들도 모두 잊어버린다. 무엇을? 귀환이라는 목적을 잊어버린다. 고향은 과거에 속해 있지만 그곳으로 돌아간다는 계획은 미래에 속한다. 그후로도 오디세우스는 거듭하여 망각과 싸운다. 세이렌의 노래로부터도 달아나고 그를 영원히 한곳에 붙들어두려는 칼립소로부터도 탈출한다. 세이렌과 칼립소가 원했던 것은 오디세우스가 미래를 잊고 현재에 못박히는 것이었다. 그러나 오디세우스는 끝까지 망각과 싸우며 귀환을 도모했다. 왜냐하면 현재에 머무른다는 것은 짐승의 삶으로 추락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기억을 모두 잃는다면 더는 인간이랄 수가 없다. 현재는 과거와 미래를 연결하는 가상의 접점일 뿐, 그 자체로는 아무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