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뎌진 감각은 날카롭게.
예리해진 성격은 조금 무디게.
작금의 나는 즐겁지 않다.
고요하고자 하나
티비 소리와 전화 수다 소리는 멎지 않는다.
음악을 틀어도 가려지지 않지만, 음악을 듣고 싶지도 않다.
그저 적막하고 정체된 공기로 둘러싸이길 바랄 뿐이다.
고요함이 주는 정서적 안정감이 있다.
도서관 처럼 무언가를 위해 집중을 하는 것이 아닌,
그냥 아무 목적이 없어서, 아무것도 하고 있지 않아서 비어있는 공간과
그 공간을 채운 정체된 공기,
무엇도 없지만, 무엇이든 할 수 있는 가능성의 공간.
새해 첫 날,
바람 하나를 적어본다.
불쌍한 우리 공주마마께옵서 고난 끝에 백성들이 마련한 땅으로 환향하시니, 백성들 모두 머리를 조아리며 천세를 외친다. 봉건 백성들에게 '민주'적인 투표권은 사치다. 그들은 피흘려 얻어낸 주권이라는 가치를 알지 못한다. 그저 궁핍한 삶을 구제하고 장렬히 산화한 성군과 그의 유지를 잇는 세력, 그리고 남겨진 불쌍한 공주, 그들에게 변함 없는 충절을 이어갈 뿐이다.
거짓과 선동, 혐오를 부추기는 자를 공정의 화신으로 추대한 세력과 부화뇌동하는 우매한 대중. 그들이 사는 이 곳이 또한 내가 사는 나라이다. 얼마만큼의 시행착오를 거치면 합리와 정의가 제 자리를 찾을 수 있을까? 혹시 정의와 합리라는 가치가 내가 알던 것과는 다른 것이였던가? 혼란스럽다. 나는 그저 환상 속에 있었을 뿐이었나 뼈 아프게 느낀다.
매 연초마다 작품집이 나오기를 기대하며 살았는데, 작년 사건 이후로 책팔이를 위한 작품상이란 이미지가 뇌리에 박혀버려서인지 올해는 시큰둥하다. 작가들의 면면도 뭔가 작년 이후로 문학사상사 보이콧으로 인한 대거 이탈?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새롭다는 느낌이 들진 않는다. 책값도 좀 터무니 없이 비싸단 생각도 든다. 젊은 작가상 수상 작품집이 저렴한 가격에 내놓는 것과 비교해 보면 확실히 문학 발전을 위한 작품상이 목적이 아닌 책팔아서 돈 벌겠다는 의지가 너무나도 강하게 느껴진다. 그리고 작업실 정리 이후로 그동안 쌓여있던 종이책을 대부분 정리하면서, 이젠 왠만해선 종이책은 사지 않겠다고 다짐하는 중이기도 하다.
작년에는 강제적이었다면, 올해는 이러저러한 이유로 자발적으로 패스하게 될 듯하다. 이젠 연초의 즐거움 하나가 없어졌다.
낡고 피폐한 마음에 허세를 덧발라본다.
보이는 것이 중요하다기 보단 보이는 것도 중요하다 말하고 싶다.
김이나
김영하, <여행의 이유>, 문학동네, 20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