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銳, 둔鈍 2023. 1. 19. text

무뎌진 감각은 날카롭게.

예리해진 성격은 조금 무디게.

작금의 나는 즐겁지 않다.

靜言思之 2023. 1. 1. text

고요하고자 하나
티비 소리와 전화 수다 소리는 멎지 않는다.

음악을 틀어도 가려지지 않지만, 음악을 듣고 싶지도 않다.
그저 적막하고 정체된 공기로 둘러싸이길 바랄 뿐이다.

고요함이 주는 정서적 안정감이 있다.
도서관 처럼 무언가를 위해 집중을 하는 것이 아닌,
그냥 아무 목적이 없어서, 아무것도 하고 있지 않아서 비어있는 공간과
그 공간을 채운 정체된 공기,

무엇도 없지만, 무엇이든 할 수 있는 가능성의 공간.

새해 첫 날, 
바람 하나를 적어본다.

천세, 천세, 천천세! 2022. 3. 24. text

불쌍한 우리 공주마마께옵서 고난 끝에 백성들이 마련한 땅으로 환향하시니, 백성들 모두 머리를 조아리며 천세를 외친다. 봉건 백성들에게 '민주'적인 투표권은 사치다. 그들은 피흘려 얻어낸 주권이라는 가치를 알지 못한다. 그저 궁핍한 삶을 구제하고 장렬히 산화한 성군과 그의 유지를 잇는 세력, 그리고 남겨진 불쌍한 공주, 그들에게 변함 없는 충절을 이어갈 뿐이다.

합리라는 환상 2022. 3. 10. text

거짓과 선동, 혐오를 부추기는 자를 공정의 화신으로 추대한 세력과 부화뇌동하는 우매한 대중. 그들이 사는 이 곳이 또한 내가 사는 나라이다. 얼마만큼의 시행착오를 거치면 합리와 정의가 제 자리를 찾을 수 있을까? 혹시 정의와 합리라는 가치가 내가 알던 것과는 다른 것이였던가? 혼란스럽다. 나는 그저 환상 속에 있었을 뿐이었나 뼈 아프게 느낀다.

이상문학상 수상 작품집 2021. 2. 5. text

매 연초마다 작품집이 나오기를 기대하며 살았는데, 작년 사건 이후로 책팔이를 위한 작품상이란 이미지가 뇌리에 박혀버려서인지 올해는 시큰둥하다. 작가들의 면면도 뭔가 작년 이후로 문학사상사 보이콧으로 인한 대거 이탈?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새롭다는 느낌이 들진 않는다. 책값도 좀 터무니 없이 비싸단 생각도 든다. 젊은 작가상 수상 작품집이 저렴한 가격에 내놓는 것과 비교해 보면 확실히 문학 발전을 위한 작품상이 목적이 아닌 책팔아서 돈 벌겠다는 의지가 너무나도 강하게 느껴진다. 그리고 작업실 정리 이후로 그동안 쌓여있던 종이책을 대부분 정리하면서, 이젠 왠만해선 종이책은 사지 않겠다고 다짐하는 중이기도 하다.

작년에는 강제적이었다면, 올해는 이러저러한 이유로 자발적으로 패스하게 될 듯하다. 이젠 연초의 즐거움 하나가 없어졌다.

덧방 2020. 9. 9. text

낡고 피폐한 마음에 허세를 덧발라본다. 

보이는 것이 중요하다기 보단 보이는 것도 중요하다 말하고 싶다. 

99.29% 2020. 8. 30. text

보통의 언어들 2020. 8. 21. text

김이나

  • 나는 완벽하다. 잘난 부분 딱 그만큼의 못난 부분을 갖춘, 완벽한 밸런스를 갖춘 사람이다. 비틀어진 부분이 있고, 그래서 나오는 독특한 시각과 표현력이 있다. 모나게 튀어나온 못된 심술도 있고, 그 반대편엔 튀어나온 만큼 쑥 패여서 무언가를 담아내는 포용력이 있다.
  •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만인에게 사랑받을 수는 없다. 하지만 역으로 말하면,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받아들인 소수와의 관계는 견고한 것이다.
  • 타인의 시선으로부터만 발견되는 나의 고유한 아름다움, 훌륭함이란 건 분명히 있다. 그리고 그런 좋은 모습을 볼수록, 나 역시도 스스로를 그렇게 믿을 수 있게 된다.
  • 공감은 오히려 디테일에서 나온다는 것이다. 공감은 기억이 아닌 감정에서 나온다. 즉 상황의 싱크로율이 같지 않더라도, 심지어 전혀 겪지 않은 일이라 해도 디테일한 설명이 사람들의 내밀한 기억을 자극해 같은 종류의 감정을 이끌어내는 것이 바로 공감을 사는 일인 것이다.
  • 사람의 장점보다는 단점을 기가 막히게 캐치해내는 사람들이 있다. 그런 사람들을 보면 쉴새 없이 자기의 단점을 고백하는 것처럼 보인다. 가급적이면 좋은 걸 더 많이 보는 사람은, 아마도 안에 좋은 게 더 많은 사람일 테다. 인간에게 '객관적' 시각이란 건 존재하지 않는다면, 차라리 나의 좋은 면에 투영시켜 좀 더 나은 세상을 보는 것도 방법이겠다.
  • 그렇기 때문에 누군가를 서글프게 본다는 문장에는 이전의 히스토리가 담겨 있다. 이미 그 사람을 소중하게 여기는 마음이 없다면 느낄 수 없는 감정이니까.
  • "나이가 들면서 귀가 잘 안 들리는 건 다 이유가 있는 거다. 나는 잘 들리지 않아서 평화롭기도 하다."
  • 젊은 가사를 젊을 때 쓰는 것과, 젊은 가사를 쓰려고 썼을 때 나오는 언어의 질감은 확연히 다르다. 
  • 감은 영원하지도 않지만 한 번 왔다 가면 영영 돌아오지 않는 것도 아니었다. 다만 다시 한 번 돌아왔을 때 그것을 펼칠 기회가 오느냐 마느냐의 문제일 뿐, 그리고 그건 내가 어떻게 살아왔느냐에 달려 있다는 것.
  • 영감뿐이랴. 새로운 걸 시작하고 싶은 의지, 힘든 일을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근성, 새로은 기회가 오기까지 잠복하고 버티는 힘... 모두 결국 체펵에서 나온다.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것들은, 이미 주어져 있는 게 많다. 다만 그것을 얼마나 소중히 여기고 다루느냐에 따라 내일의 질이 달라질 뿐이다.
  • 그래서 제가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을 하라고 이야기 하는 건 달콤하고 좋아서가 아니라, 자기도 모르는 자기의 내면을, 방치되어 있던 모습들을 다 끄집어낼 수 있는 행위가 바로 사랑이기 때문잉[여.
  • 결국, 완벽한 결과물을 만드는 데 필요한 건 하늘에서 떨어진 능력이 아닌 열정과 끈기라는 걸요.
  • 선택받지 않았다는 사실, 그리고 선택을 받았다가 되돌아간 마음이니까 그게 참 받아들이기가 힘든 일이긴 한데... 내가 어떤 문제가 있어서는 아니죠. 이건 그저 상대의 마음 온도가 식어가는 속도 같은 게 두 사람이 맞지 않았을 때 벌어지는 일인 거죠.
slow dance 2020. 4. 21. text

  • 연결고리요?
  • 그래, 예를 들어
    예전부터 아는 사이라던가, 직장이 같다던가, 
    우리처럼 이웃 사촌이라던가...
    의식하지 않아도. 오히려 만나고 싶지 않아도 만나게 되는
    우연한 만남 속의 필연적인 연결고리 말이야.
    이 세상엔 셀 수 없을 만큼 수많은 남자와 여자가 있잖아.
    이른바 적령기의 남녀가 말야.
    그런데 만날 수 있는 건. 내경우엔.
    만날 수 있는 사람은 정말 손가락으로 꼽을 정도잖아.
    설령 만났다고 하더라도 
    스쳐지나가는 걸로 말도 못 붙이고 끝나는 경우도 있고.
    만약에 이 세상의 모든 남자와 만날 수 있다면
    나라도 100% 흠뻑 빠지는 남자가 있을지도 모르잖아.
    아니, 있을 거야. 반드시 있어.
    하지만 실제로 만났던 정말 손가락으로 꼽을 만큼의 남자들 중에는
    99%만 빠지는 남자 밖에 없다면
    난 분명히 그 99%만 빠지는 남자와 사귈 거야.
    이해 돼?
  • 뭐 대충요.
  • 그거 좀 그렇지?
    정말 사소한 만남만 있다면, 연결 고리만 있다면
    이 세상 어딘가에 있을 100%의 남자와 이어졌을 지도 모르는데 말야.
  • 그럴까요?
  • 어?
  • 만나지 못 했다는 건 100%가 아니라는 거잖아요.
    만약에 이 세상 모든 남자들 중에
    당신에게 100% 훔뻑 빠질 남자가 있더라도. 있다고 쳐요.
    그래도 만나지 못 했다는 건, 연결 고리가 아무것도 없었다는 건
    그건 결국 99%이지 100%는 아니란 거잖아요.
    아무리 사소한 만남이라도, 연결 고리라 해도
    그 자체가 바로 남은 1%가 되는 거예요.
    역시 전 4차원이 아니라 지구 뒷편이 아니라
    지금 제가 살고 있는 이 세상에 100%의 상대가 있다고 믿고 싶어요.
여행의 이유 2019. 4. 29. text

김영하, <여행의 이유>, 문학동네, 2019

 

  • 인간은 언제나 자기 능력보다 더 높이 희망하며, 희망했던 것보다 못한 성취에도 어느 정도는 만족하며, 그 어떤 결과에서도 결국 뭔가를 배우는 존재다. p. 23
  • 여행하지 않는 사람은 편안한 믿음 속에서 안온하게 살아갈 수 있다. 그러나 여행을 떠난 이상, 여행자는 눈앞에 나타나는 현실에 맞춰 믿음을 바꿔가게 된다. 하지만 만약 우리의 정신이 현실을 부정하고 과거의 믿음에 집착한다면 여행은 재난으로 끝나게 될 것이다. p. 35
  • 과거는 이미 지나갔다. 미래는 아직 오지 않았고 알 수도 없다. 그렇다면 그냥 현재를 즐기자. 현재는 무엇인가. 그것은 내가 여행을 하고 있다는 것, 그리고 사람들과 마주 앉아 다양한 주제로 대화를 하고 있다는 것. 미래는 포기하고 현재에 집중하자고 생각했고 그것은 사실 내가 모든 여행에서 택하는 태도이기도 했다. p. 109
  • 페넬로페의 침대에 누운 오디세우스는 비로소 깨달았을 것이다. 그토록 길고 고통스러웠던 여행의 목적은 고작 자기 자신으로 돌아오기 위한 것이었다. 때로 그는 고향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것을 잊었다. 영원히 늙지 않는 아름다운 요정 칼립소의 침대에서 매일같이 맛있는 것을 먹으며 행복한 여행자로 죽을 수도 있었다. 그러나 지혜의 여신이 그를 다시 고난의 여행길로 끌어냈고 그는 무거운 책임과 의무가 기다리는, 자신의 그림자를 드리울 곳으로 돌아갔다. p. 152
  • 일단 누군가를 신뢰하기로 마음먹으면 우리의 정신 속으로 평안함뿐 아니라 자극과 흥분이 파고들어온다. 신뢰란 다른 생명체와 맺어지는 관계 가운데 가장 큰 기쁨을 준다. p. 143
  • 인류가 한 배에 탄 승객이라는 것을 알기 위해 우주선을 타고 달의 뒤편까지 갈 필요는 없을지도 모른다. 우리는 인생의 축소판인 여행을 통해, 환대와 신뢰의 순환을 거듭하여 경험함으로써, 우리 인류가 적대와 경쟁을 통해서만 번성해온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된다. 달의 표면으로 떠오르는 지구의 모습이 그토록 아름답게 보였던 것과  그 푸른 구슬에서 시인이 바로 인류애를 떠올린 것은 지구라는 행성의 승객인 우리 모두가 오랜 세월 서로에게 보여준 신뢰와 환대 덕분이었을 것이다. p. 148
  •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떠나야 하는 이주자와 자기 결정에 따라 여행하는 자가 보는 풍경은 다르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이 느끼는 것은 확연히 다를 수 밖에 없다. 이주자는 일상을 살아가는 반면 여행자는 정제된 환상을 경험하고 있다고도 말할 수 있다. p. 199
  • 소설에서는 그냥 일어나는 사건이 거의 없다. 나중에 일어날 일들과 어떻게든 연결되어 있다. 소설은 재미있는 일들을 집어넣는 게 아니라 무의미한 사건들을 배제하면서 쓰인다. p. 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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