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체 없는 삶.
1.
최근 생활 전반에서 대상을 직접 보거나 만지는 등 감각을 통한 체험이 이루어져서 가치를 판단하기보다는 이차적 매체-시각 매체가 대부분-를 통한 이미지와 설명, 평가 텍스트를 접하며 판단하는 경우가 많다. 예로 인터넷· TV 쇼핑 같은 미디어를 통한 판단 및 구매의 과정과 같이 실체 없이 보이는 상품 이미지와 설명글, 후기글이 구매를 불러일으키는 것처럼. 이미 대중화된 미디어 기기들과 소셜네트웍을 통해 번져나가는 진위를 알 수 없는 '사실'들은 무수히 많이 복제되고 확대, 재생산되어 '진실'의 여부와는 상관없는 또 다른 '진실'이 되어버리고 있다.
2.
디자인을 구분할 때-특히 시각 분야의 디자인- 흔히 매체를 기준으로 나누곤 한다. 인쇄·출판 편집 디자인, 웹(편집) 디자인, 영상 디자인 등. 그중 인쇄·출판 편집 디자인은 시각 분야에서는 가장 대표적인 '실체'를 만드는 분야인데, 이상하리만큼 그 실체를 접할 기회는 많지 않다. 최근의 인쇄·출판 분야의 시장 축소가 그 이유일 수도 있고, 그보다 근본적으로 미디어 디바이스의 성장이 이유일 수도 있다. 그런 면에서 보면 어쩌면 자연스러운 현상이지만, 내가 주목하고자 하는 것은 실체 없이 과장되고 부풀려진 작업물과 그 평가, 그 평가를 통해 재생산된 또 다른 평가와 이미지이다. 실체보다는 매체를 통해 부풀려진 시뮬라시옹은 또 다른 description과 copy, paste, share, like, re-tweet을 통해 롤랑 바르트의 신화화 과정에서처럼 일차적 의미 위에 새로운 의미를 점점 더하게 된다.
3.
http://comic.naver.com/webtoon/detail.nhn?titleId=602921&no=27&weekday=thu
위 링크의 이말년 웹툰에서 모래요괴가 유사하를 벗어나는 과정처럼, 누군가는 이런 허공을 딛고 올라가는 넌센스 한 상황을 잘 이용했다고 생각한다. 해체주의 이후의 흐름에서의 개념적 움직임들이 이런 식의 실체 없이 허공을 딛고 하늘을 오르는 경험을 이용하고 있다.
작업A - 평가B - 작업A' - 평가B'의 사이클로 a가 A라는 포스터 작업을 했을 때 b는 a와 A에 대한 찬양에 가까운 평가로 B라는 글을 쓴다. A는 또다시 b의 글 B를 책으로 엮어 작업하고(A') b는 다시 B'라는 평론을 쓴다.
이러한 사이클이 반복적으로 진행되어 어떤 궤도에 돌입했을 때, 그들이 더이상 그 사이클을 반복하지 않아도 또다른 누군가는 또다른 매체를 통해 그 사이클을 복제하고 확대, 재생산한다. 바닥에 발이 닿기 전에 다른 발을 올려놓다보면 어느 순간 발을 움직이지 않아도 하늘에 떠있을 수 있는 상황이 벌어지는 것이다.
여기서 최초의 작업A는 중요하지 않다. 그저 생경하다면 그대로 좋을 뿐이다. 유럽의 어떤 작업 방식을 떠올릴 수 있다면 금상첨화이고, 그들의 등 뒤를 지켜줄 수 있는 든든한 백그라운드와 지속적으로 관심을 가져주는 매체, 교묘하게 재편집하여 새로운 컨텐츠 처럼 보일 수 있는 수완이면 충분하리라.